09/07/2026
지난 7월 8일, 대한민국 원자력 개발의 초석을 놓으신 고(故) 이창건 박사님의 추도식이 엄수되었습니다.
박사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도입과 운전, 고리 원전 부지 선정, KEPIC 제정 등 한국 원자력 반세기 역사의 굵직한 순간마다 함께하신 큰 어른이셨습니다.
이날 한국원자력연구원 임인철 원장직무대행께서 봉독하신 추도사 전문을 아래에 옮깁니다.
追悼辭
존경하는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고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 깊은 슬픔 속에서 고(故) 이창건 박사님을 추모합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원자력 역사의 한 시대를 개척하신 큰 스승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한평생 국가 과학기술 발전과 원자력 기술의 자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과 지혜를 바치셨습니다.
그 숭고한 삶을 생각하면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쉬움과 허전함은 더욱 커집니다.
박사님께서는 1929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젊은 시절 월남하여 서울대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셨고,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이후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원자력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시며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여는 선구자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1950년대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의 불모지로 원자력 기술도, 연구시설도, 전문 인력도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박사님은 뜻을 함께하는 젊은 과학자들과 함께 대한민국에 반드시 원자력 기술이 필요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품으셨습니다.
그 신념은 원자력법 제정과 정부 전담기구 설치, 그리고 한국원자력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원자력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1959년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가 도입될 때에도 박사님은 가장 앞장서 그 역사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해외에서 운전교육을 마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운전면허를 취득하셨으며, 이후 세계 최초로 연구용 원자로의 출력증강에도 성공하셨습니다.
또한 해외에서 수입하던 중성자원을 국내 기술로 재생하여 사용함으로써 원자력 기술 자립의 가능성을 몸소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렇다고 박사님이 연구실 안에만 머무는 과학자도 아니셨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부지를 선정하는 중책을 맡아 전국의 해안을 직접 답사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고리지역을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원전 부지로 선정하셨습니다.
그 결정은 대한민국 원전 산업의 출발점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원전 운영국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박사님은 또한 수십 년 동안 한국전력산업기술기준, KEPIC 제정을 이끌며 우리나라 전력산업과 원자력산업의 기술 표준을 확립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원전 기술 경쟁력을 갖게 된 데에도 박사님의 묵묵한 헌신이 깊이 스며있습니다.
박사님의 관심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었습니다.
발전소의 버려지는 열을 활용한 해수담수화 기술을 개발하시고, 우리나라가 개발한 SMART 소형원자로의 활용 분야를 넓히는 연구에도 앞장서셨습니다.
평생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더 나은 기술을 고민하셨던 참된 연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학계와 국제사회에서도 박사님의 업적은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한국원자력학회의 창립을 함께하셨고, 국제원자력학회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시며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셨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INSC Global Award 수상, 3·1문화상, 그리고 대한민국 초대 과학기술유공자 선정은 박사님의 업적에 대한 당연한 평가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것은 박사님의 훌륭한 인품입니다.
박사님께서는 "한 명의 훌륭한 원자력 기술자를 키우는 데에는 그 사람 몸무게만큼의 금값이 든다"고 말씀하시며, 자신은 귀금속이 아니라 후배들이 마음껏 성장하도록 자신을 태워 빛과 온기를 내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자신보다 후배를 먼저 생각하시고, 자신의 명예보다 우리나라 원자력의 미래를 더 소중히 여기셨던 그 겸손한 말씀은 박사님의 삶 자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박사님의 넉넉한 인품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소 입사 초기 신입 연구원 시절, 박사님은 제가 감히 대화를 청하기도 어려운 연구위원이셨음에도 제 보고서의 글자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검토하여 가르침을 주셨던 감격스런 기억이 생생합니다.
2023년 8월 7일, 당신의 꿈에 있었을 법한 국산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방문하던 모습이 원자력연구원 후배들에게 보여주신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 분의 위대한 과학자를 떠나보내지만, 박사님께서 남기신 정신과 업적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원자력의 역사 속에는 언제나 박사님의 이름이 함께할 것이며, 수많은 후학과 연구자들의 가슴속에도 박사님의 가르침은 오래도록 살아 숨 쉴 것입니다.
존경하는 이창건 박사님.
박사님께서 평생 일구어 오신 대한민국 원자력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결실은 박사님의 선견지명과 헌신, 그리고 나라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남겨주신 뜻은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
남겨주신 도전정신과 애국심, 그리고 후학을 사랑하셨던 따뜻한 마음도 오래도록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대한민국 원자력의 큰 스승이셨던 이창건 박사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깊은 존경과 사랑을 담아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2026년 7월 8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직무대행 임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