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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민·애국 세력은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가?  1. 배신정권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이재명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40%대에서 계속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배신의 길로 갔을 때 더...
31/08/2026

왜 애민·애국 세력은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가?





1. 배신정권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이재명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40%대에서 계속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배신의 길로 갔을 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정부에 의해 배신정권이 성립된 이래 반동정권과 배신정권이 번갈아 가며 권력을 장악하였습니다. 하지만 33년의 세월의 과정에서 배신정권과 반동정권이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개혁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물론 김영삼 배신정권에 이어 등장한 김대중과 노무현 배신정권,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의 반동정권 이후에 탄생한 문재인 배신정권은 처음부터 배신의 길을 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김영삼 배신정권처럼 자신의 존립 근거를 군사독재 세력과의 대립 구도에서 찾듯이, 배신정권이 단지 군사독재세력이나 반동세력과의 대립 관계에서 자신의 존립 근거를 찾을 때 어김없이 배신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시대적 흐름이 바뀌었는데도 이를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군사독재 세력이 민을 가혹하게 억압하고 탄압하였을 때 이들에 대한 반대 투쟁은 유의미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맥을 추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그런 구도에 매달린다는 것은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라보고 지난날의 기사도 정신만 강조하는 돈키호테식의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광범위한 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군사독재 세력이 맥을 추지 못한 이후의 시대적 흐름은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누리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군사독재 내지 반동세력과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누리며 살게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대립 구도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난날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배신정권이 처음부터 배신의 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정권 초기엔 어느 정도 지지율을 유지합니다. 배신정권의 등장 계기가 군사독재 세력이나 반동세력을 반대하는 과정이었고, 그런 관계로 정권 초기에 이들을 청산하는 절차를 일정하게 진행하니 지지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지지율이 계속 유지되자면 그 이후엔 시대 흐름에 맞는 정책을 제시하고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편으로 군사독재 세력을 이어받는 반동세력은 어차피 반대할 것이고, 반면에 새로운 정책을 기대하고 있는 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니 실망감을 느끼고 반대하는 길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로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보면 명확히 확인됩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배신정권의 등장 이래 반동세력과 배신세력 간의 거대 양당 체제로 되었습니다. 제3 정당이 있기는 하지만 별반 영향력이 없고, 사실상 거대 양당 체제의 이중대 역할을 하는 데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배신정권이 군사독재 세력의 형태를 이어받는 반동세력과의 대립 구도에서 자기의 존립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는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반동세력의 핵심을 고립시켜 정권의 안정적 기반을 도모하려는 형태이고, 또 하나는 아예 반동세력과 선을 그어 대립 구도를 명확히 함으로써 자기들 배신세력이 앞으로도 계속 권력을 잡는 것이 정당하다는 식의 주장을 제시하는 형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중 어떤 방식을 취하더라도 반동세력은 배신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윤석열이 탄핵된 이후에 장동혁 대표 체제로 전환되었는데 이들이 어떤 이상야릇한 행동을 보이더라도 그 지지율이 20~30%대 이하로 잘 내려가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신정권이 잘못된 정책을 펴면 반사 이익으로 그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데에서 확인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반동세력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자기편 세력을 확고히 지지해 주지 않으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결국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배신정권의 지지율 변화는 반동세력이 아니라 광범위한 민의 지지를 받느냐, 못 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의 인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누리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반동세력과의 관계도 통합이냐, 아니면 대립 관계냐 하는 그 형태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입장에 근거하여 통합하느냐, 대립하느냐가 중대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부차적인 차원인 반동세력의 존립 구도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입니까? 실상 반동세력은 시대 흐름상 진작 사라져야 할 세력입니다. 그런데도 이들 세력을 존립시키는 구도로 접근한다는 것은 민을 바보로 여기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만행위는 이제 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광범위한 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여기서 배신의 길로 가는 배신정권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2. 배신정권은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게 하자면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생존권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조건에서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고 산다는 것은 허상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데, 배신정권은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빈부격차를 해소하자면 그만한 물질적 기반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금융이나 전력, 철도 등의 산업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적 소유로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 물질적 기반을 기초로 공공적인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갈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반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공공적인 부분의 삶부터 안정적이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도 명확한데도 배신정권은 이런 길로 나아가지 않고 군사독재 세력과의 대립 구도를 그어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인 인정에 그쳤던 것처럼, 경제적 문제를 푸는 데서도 군사독재 세력이 관치 경제와 정경유착으로 문제가 발생했던 점에 주목하고서 이를 해소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김영삼 정권에서부터 IMF 지배 통치 이래 관치 경제와 정경유착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자본의 법칙이 그대로 관철되도록 하여 세계거대독점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하였습니다.



재벌이 국가의 엄청난 특혜를 받아 성장했다고 한다면 그 혜택을 민이 누릴 수 있도록 국가적 환수 조치를 취해야 하건만 외세의 세계거대독점자본에 헐값에 팔아넘겼으며, 심지어 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산업 분야의 국영기업이나 공기업마저 민영화의 길로 나아가 헐값에 팔았다는 것입니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근본 목적은 민이 물질·문화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면 별반 의미가 없듯이, 자본의 법칙이 관철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에게 풍족한 삶을 가져다주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민의 삶에 해악을 준다면 적극 개입해서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국영기업이나 공기업마저 세계거대독점에 팔아넘기거나 민영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단지 자본의 법칙이 형식적으로 관철되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니 빈부격차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자본의 법칙이 관철된다고 하면 어차피 거대독점자본이 형성되고 나머지는 몰락하면서 빈부격차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필연적 이치인데 말입니다.



이런 배신정권의 정책은 군사독재 시절엔 관치 경제와 정경유착의 형태를 통해 재벌과 외세의 거대독점자본에 특혜를 주었다고 한다면, 이젠 자본의 법칙을 관철시키는 방식을 통해 외세의 세계거대독점자본과 한국의 대기업에 이익을 안겨주는 형태로 전환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것은 군사독재 시절보다 도리어 배신정권과 반동정권이 등장한 이후에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심화되었다는 사실에서 명확히 확인됩니다.



이렇게 빈부격차가 극대화된 조건에서는 재력 있는 소수 사람들을 제외하고 거의 대다수 사람이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미래의 희망을 발견할 수가 없게 됩니다. 당장 자기 삶의 미래마저 불안한 상황에서 후세대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출산율도 급격히 떨어집니다. 여기서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일단 태어난 후세대, 특히 청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부모에게 의탁하고 있는 어린 세대는 뭐라 자기 의견을 밝힐 수 없는지라 어쩔 수 없겠지만, 청년 세대는 자기 의사를 표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사람이야 어차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벌어 둔 돈도 있을 것이고, 설사 없다고 해도 이미 늙어 적극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앞으로도 한참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 전망이 보이지 않으니 어찌 좌절과 절망을 겪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희망을 볼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조건에서 어떻게 배신정권을 지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청년들은 관치 경제나 정경유착에서 벗어나 자본의 법칙이 형식적으로 관철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희망을 볼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 또한 이런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배신정권의 정책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태 중의 하나가 비수도권 균형 발전을 위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라고 발표하면서 그 일환으로 서남권에 광주 군공항 기지를 중심으로 반도체 팹 4기를 구축하겠다고 하는 모습입니다. 그러고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전력과 용수 등의 문제를 해결해 줄 터이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적극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개혁한다면서 자유와 평등의 형식적인 인정에 그쳤던 것처럼, 민생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한국 경제의 규모만 키우면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바라보는 낙수 효과 주장의 재판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 경제의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해당하지만 왜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으며, 청년들은 어떤 희망도 보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빈부격차가 확대되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적 메가프로젝트라고 한다면 한국 경제의 성장 자체가 아니라 국가의 물질적 기반을 어떻게 확대·확보할 것인지를 비롯해, 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법은 물론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면밀히 타산하고 추진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별반 따져보지도 않고 단지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기만 하면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기반 시설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하면서 대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시대 흐름과 벗어나는 모습입니까? 이것은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 대기업에 대한 또 다른 특혜가 될 것이고, 동시에 국가의 물질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여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국가적 사업이 잘되면 대기업이 그대로 혜택을 보겠지만, 만약 잘못되었을 경우 세금으로 담보하여 진행했기에 결국 국가와 민에게 고통이 전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이재명 정부 또한 한국 경제를 성장시킨다면서 빈부격차를 확대시켜 왔던 지난날의 군사독재와 배신정권의 경제 정책 추진 방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현 시기의 시대적 흐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제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재명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게 된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주식 시장과 부동산 정책을 대하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민이 그 혜택을 무조건 누린다고 말할 수 없듯이, 주식이 오른다고 해서 그 혜택이 무조건 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개미 투자자들이 돈을 벌기보다는 세계거대독점자본을 비롯한 투기 세력이 돈을 벌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면 주식 시장이 투기적 요소에 좌우되지 않고 제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하고, 그러자면 민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산업에 대해 국가적 소유의 물질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면서 국내적 산업 기반을 전반적으로 더욱 튼튼히 다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그런 정책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주되게 주식 시장의 값을 올리려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주식 시장은 특정 종목에 지나치게 의존해 있는데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까지 도입했으니 더욱 투기 형태가 조장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세계거대독점자본을 비롯한 투기 세력이 돈을 벌게 됨으로써 한국의 국부가 유출되고 개미 투자자들과 민이 고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문제 또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누구는 돈이 있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집이 없어 남의 집을 전월세로 빌려 산다는 이유만으로 주거비에 큰 부담을 안게 된다면 이 자체가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를 해결하자면 부동산이 투기적 요소로 되지 않고 한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마땅히 자기 집을 마련해서 살 수 있어야 할 권리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집 없는 사람이 누구나 자기 집을 마련해서 살 수 있게 하면 부동산이 투기적 요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현 시기 부동산이 투기적 요소로 작용하여 일부 투기 세력이 엄청난 불로소득을 벌어들이고 있기에 이를 일정한 선에서 세금으로 환수해야 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기적 요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세금으로만 환수하려고 하면 결국 그것은 집 없는 서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세금 환수 정책은 부동산 문제 해결의 본질적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그 해결책은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가 책임지고 주택을 공급하여 풀어가야 합니다. 그리해서 누구나 집을 가지게 된다면 부동산이 투기적 요소로 크게 작용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집을 가지게 하는 조치가 취해진다면 실수요가 거의 없다는 것인데, 그런데도 투기적 형태가 극성을 부린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은 국가가 책임지고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공급하고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본질적 문제를 외면한 채 세금 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하였으니 어떻게 문제가 풀릴 수 있겠습니까? 집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많이 부담하게 되니 당연히 반대할 것이고, 집 없는 사람은 집을 마련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세금 환수로 인해서 전가된 비용을 물게 되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결국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요를 안정적으로 창출하면서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빈부격차를 극대화하면 결국 파국을 맞게 되고 경제적 발전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산업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적 소유로 하여 물질 경제적 기반을 확고히 구축하면서도 노동, 농민, 교육, 청년, 여성, 교육, 보건, 복지, 세금, 환경 등 사회 제반 정책에 걸쳐 어려운 사람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차원이 아니라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에서 접근하여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총체적인 사회 개혁을 전개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에서 한국 사회 전반의 체질을 확고히 바꿔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배신정권은 현 시기의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게 자유와 평등의 형식적인 인정이나 자본주의 법칙의 형식적인 관철에만 머물러 있는 관계로 이런 총체적인 사회 체질 개선 방향으로 접근하여 풀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배신정권은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을 결코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배신정권은 미국의 압력에 버텨내지 못한다



빈부격차를 해소하여 한국 민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면 주권을 명확히 행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정책은 한국 민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외세의 세계거대독점자본에게는 그만큼 자본의 이윤 획득을 감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실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당연히 압박을 가하며 간섭하고 들어옵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 간섭과 압력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겨내지 못하면 한국의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껏 배신정권이 한국의 독자적인 정책 추진 자체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젊은 시절 대중경제론을 제창했는데, 그 핵심적 요체는 민족경제를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미국에 대해서 당당하게 할 말을 하겠다고 결기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지난날의 얘기는 다 내팽개치고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며 배신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한국의 경제적 명맥을 사실상 세계거대독점자본이 장악한 관계로 싸워봤자 버텨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간섭과 압력을 이겨내자면 전민이 단합해서 싸워야 합니다. 지금 트럼프 정부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한 침공에서 여실히 보여주듯 경제적 압박만으로 되지 않으면 군사적 침략도 서슴지 않고 감행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자면 전민을 하나로 단합시켜 싸우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 시기의 시대적 흐름에 맞게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하여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하겠다는 확고한 입장이 아니라, 단순히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차원이거나 혹은 외세의 세계거대독점자본이 한국 민의 피땀으로 이룩한 노력의 결실물을 수탈해도 자본주의 법칙이 관철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배신정권이 어떻게 민을 하나로 단합시켜 미국과 단호히 맞서 싸우려는 결전의 의지를 내보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썩은 고목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배신정권의 정신적 상태와 사상 의지적 측면을 놓고 볼 때 미국과 결연한 태도로 대응하지 못하고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재명 정권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한국의 돈을 어려운 한국 경제와 빈부격차 해소에 사용하지 못하고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라든가, 한미동맹 현대화란 미명하에 한국 땅을 미국의 대중국 전초 기지 역할로 전락하게 하는 것도 배신정권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필연적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배신정권에 넋 놓고 기대하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4. 이제는 애민·애국 세력이 직접 나서야 한다



반동세력과 배신세력에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면 방법은 단 하나 이제 애민·애국 세력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배신정권에 반대하고 나서면 반동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지 않겠느냐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신세력이 실질적인 개혁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게 증명된 조건에서 민이 나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민이 직접 나섰을 때 반동세력에 대한 반대 투쟁도 적극적으로 전개되면서 실질적으로 응징할 수 있습니다.



실상 애민·애국 세력이 스스로 나서서 미국과 한판 싸움을 결연히 준비해 나간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애민·애국의 사상적 기치는 인간으로 자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은 누구나 개성을 가지고 집단을 구성해서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기에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자면 일차적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주권을 회복해야만 하는데, 여기서 이를 가로막는 최대의 세력이 외세와 매국노이기에 이를 응징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한 내용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민을 애민·애국의 기치로 단합시킬 수 있고, 그 단합된 힘으로 미국과의 한판 싸움에서 당당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하나로 단합하면서 그런 경제력과 군사적 대응 능력을 이용한다면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실상 미국과의 싸움은 저 멀리 태평양 같은 링 위에서 누가 힘이 센가에 의해 결정되는 싸움이 아닙니다. 바로 한국 땅에서 한국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벌이는 싸움입니다. 따라서 전민이 단합해 싸운다면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을 침략하기 위해 기어들어 온 미군 세력은 거대한 한국 민의 물결에 에워싸여 포위된 섬의 처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승리할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건 한국 땅에서 미국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매국노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분열된 관계로 이기지 못하고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애민·애국 세력이 직접 나서서 수행해야 할 일은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를 구축해 가면서 미국의 주권 유린 행위에 반대하는 동시에 매국노를 응징하는 싸움을 벌이는 것입니다. 미국과의 한판 싸움을 벌여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땅에서 매국노 역할을 수행하는 세력을 기필코 응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그대로 놔두고서는 전민적 단합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특히 매국노를 응징하는 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국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데에서 성조기를 들고나오는 세력입니다.



외국과 정상회담을 한다거나 어떤 행사를 같이했을 때 친선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그 나라의 국기를 들고나와 환영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하지만 한국 문제를 푸는데 외국 국기를 들고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국 문제를 풀고자 하는데 외국 국기를 흔드는 행위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없습니다. 자유가 보장되자면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유가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듯이 한국의 문제를 푸는 데 외세가 한국의 주권을 간섭하거나 짓밟아 주라고 요청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외세를 끌어들여 자기 나라를 유린하라고 구걸하는 매국 행위일 뿐입니다.



이런 행위는 매국 행태에 다름 아님을 분명하게 직시하도록 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한국 땅에서는 친선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큼은 감히 외국 깃발을 들고나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더욱이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주권을 유린하는 핵심적인 세력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정권을 겁박하여 한국 민이 피땀으로 이룩한 재부를 약탈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난날의 식민 지배 행위도 제대로 사과하거나 반성하지도 않고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서 한반도를 재침하려는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라면 일장기와 성조기를 한국 땅에서 들고 흔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흔든다는 것은 매국 행위임을 분명하게 직시하게 하고 앞으로는 더 이상 들고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땅에서 성조기를 들고 흔드는 상황이 벌어지니 미국은 더욱 기고만장하여 한국 정권을 겁박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고, 한국의 정치권과 고위급 관료들은 매국 행위를 버젓이 저지르면서도 성조기 부대의 뒷배를 믿으며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얼마든지 자기주장을 밝히는 것은 좋으나 외세의 간섭을 불러와 주권을 유린하도록 호도하는 데 일조하는 성조기만은 들고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분명한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성조기를 한국 땅에서 들고나와 흔들지 못하게 한다면 미국 또한 한국의 정권에 대해 함부로 겁박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한국의 정치권과 고위급 관료들 또한 감히 매국 행위를 저지르면서 정당화하는 행위를 대놓고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애민·애국 세력은 이 성과를 기반으로 한국에서 전민적 단결을 이룩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를 구축하고, 마침내 외세와 매국노를 응징하여 애민·애국의 정권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애민·애국 정권의 힘으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방면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2026. 8. 31.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사회역사의 주체인 민이 제반 영역에서 주인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을 연구하고 알려내는 활동

애민시대에서의 애민, 애국에 대한 이해 1. 애민, 애국에 대한 이해의 혁신 배경 1차 세계대전은 식민지 쟁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과 달리 전개되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
24/08/2026

애민시대에서의 애민, 애국에 대한 이해



1. 애민, 애국에 대한 이해의 혁신 배경



1차 세계대전은 식민지 쟁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과 달리 전개되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나치즘, 파시즘,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반파시즘연합전선과 민족해방전선의 싸움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승리한 결과 자유와 평등이 형해화를 넘어 적극적으로 관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식민지였던 국가도 당연히 독립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 제국주의 세력은 사회주의권과 신생독립국가의 등장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날의 제국주의 세력을 다시 끌어모아 동맹을 형성해 우두머리 국가로 등극합니다. 현대 제국주의 등장입니다.



미국은 현대제국주의 국가로서 사회주의권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고립 붕괴 정책을 실시하면서 동시에 신생 독립국을 향해서는 형식적으로 독립을 인정하나 미국의 앞잡이 매국노를 내세워 지배하는 신식민지 체제를 형성하였습니다. 이것은 지난날과는 달리 매국노의 위상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2. 신식민지에서의 매국노의 위상 변화



강대국이 패권을 행사하여 침략할 때 거의 대부분 외세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매국노들이 등장합니다. 매국노들의 등장은 외세와의 싸움에 지극히 불리한 상황을 초래합니다. 역량 관계의 변화를 두 배 이상으로 가져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세와의 싸움을 철저히 벌이는 데에 있어서 매국노의 응징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띠게 됩니다.



그런데 지난날의 매국노들은 국내 기반이 취약하였습니다. 아니,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식민지 모국의 힘에 뒷받침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자신들의 사적 욕망을 위해 외세에 빌붙거나 그렇지 않으면 침략국의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매국노들은 국내적 기반이 있을 수 없었고, 오로지 외세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외세를 몰아내면 이들 매국노는 당연히 나라와 민족의 반역자로 처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식민지 지배 체제로의 전환은 이런 매국노의 위상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식적인 독립을 인정한 이상, 한 나라를 이끌려면 어떤 형태로든 간에 국내적 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쿠데타 형식이든, 아니면 형식적인 국민투표를 통해서든 국내적 절차를 밟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내적 절차를 밟는 과정은 지난날의 매국노와는 질적으로 다른 위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절차를 밟았으니 국내에서 주인 행세할 수 있는 권한이 성립하였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외세의 허수아비가 아니라 국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담당자로 등극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실질적으로 독립을 이루어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외세와의 싸움만이 아니라 외세의 앞잡이 매국노와의 싸움이 중대한 영역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당연한 게 이들 매국노가 외세와의 싸움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있는 관계로 이들을 응징하지 못하면 외세와의 싸움 또한 힘 있게 전개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3. 신식민지에서 배신세력의 등장 의미



신식민지 지배 체제로 전화하여 매국노가 국내 절차를 밟아 주인 행세할 권한을 획득했지만, 그것은 지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립을 이룩했는데도 형식적인 인정으로만 그치고 도리어 매국 행위를 벌이는 자가 주인 행세한다는 것은 민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세력 간에는 커다란 충돌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매국노들에게는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과 협조가 이뤄지고, 반면에 애국 세력에게는 탄압이 가해집니다. 한국에서 미군정 시기에 친일 매국노들이 친미 매국노로 변신하는 데에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가 이뤄졌고, 여순항쟁과 제주도 4·3항쟁 과정에서 엄청난 폭력적 탄압이 가해졌던 사실은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런 형태로 장악한 권력은 지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유린하는 독재정치가, 특히 군사독재정치가 실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취약한 권력 기반 때문에 외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외세와의 협정을 맺어갑니다. 즉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형태의 불평등한 협정과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것은 외세가 신식민지 지배 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매국노를 지원하고 양성했다는 점에서 당연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외세와 매국노가 주인 행세하는 식민지매국사회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를 엄밀하게 표현하면 (신)식민지매국사회라고 해야 하지만, 구식민지나 신식민지도 식민지이고, 어차피 매국노가 국내에서 주인 행세해도 외세의 지배가 관철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식민지매국사회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조차 유린하는 군사독재 체제는 민의 항거에 부딪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울러 제국주의 세력의 수탈 체제의 변화와도 관련해 토사구팽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미국은 한국에서 제국주의의 수탈 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맨 처음에 원조와 차관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관계에 맞게 한국의 경제를 바꿔나갔으며, 급기야 경공업과 중공업의 분업 체계를 형성해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형성되고 발전됨에 따라 노동자 계급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투쟁이 전개됨에 따라 자유와 평등을 유린하는 독재정치에 대한 투쟁도 적극적으로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군사독재 세력은 더 이상 지탱되지 못하고 붕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야말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사회가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런 민의 이해와 요구를 가로막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바로 배신세력입니다. 배신세력은 군사독재 세력과 싸울 때에는 민과 함께했지만, 군사독재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자기들이 권력을 잡자,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민을 배반한 세력입니다.



이들은 군사독재 세력이 자유와 평등을 유린했던 데에서 벗어나 형식적으로 인정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누리며 살려는 방향으로는 나아가지 않았으며, 나라의 주권도 제대로 행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지난날 매국노의 핵심 세력이 군사독재 세력이었으나 이제는 그 자리를 배신세력이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배신 정권의 등장은 김영삼 문민정부부터였습니다. 이들이 등장하게 된 국내적 배경은 반독재 투쟁이 거국적으로 전개되면서 군사독재 체제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세계화 정책이 추진된 시대사적 배경이 놓여 있습니다.



미국은 1980년대 말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세계유일패권을 형성하고자 시도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현대제국주의로부터 세계제국주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 차원에서 국가라는 장벽도 무력화하면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지배하고 수탈하는 세계 유일적 패권 체계를 수립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계거대독점자본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유통되어야 했고, 그러자면 민족성과 국가의 주권이 무력화되고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 인정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요구는 군사독재 체제에서는 받아 안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군사독재 체제는 자유와 평등조차도 유린했을 뿐만 아니라 일정하게 민족성 형태로 치장하여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지만, 겉치장의 민족성도 배제하고 국가라는 주권조차 무력화하여 미국의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지배와 수탈 체제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세력이 요구되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배신세력이었습니다. 군사독재 세력을 대신해 배신세력이 매국노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애민과 애국을 이해하는 데 또 한 번 혁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4. 애민시대에서의 애민과 애국의 심화 발전



배신세력이 등장하였다고 해도 1945년 해방된 뒤 독립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신세력에 대한 반대 투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작용의 결과로 도리어 역사를 되돌리려고 하는 반동세력이 등장하였고, 그 이후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이 한국 사회의 권력을 놓고 나눠 먹는 과정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배신세력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개혁이라는 언사를 수없이 사용하며 개혁할 것처럼 민을 기만하였지만,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33년의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우선 국제 정세에 있어서 영원무궁할 것 같았던 미국의 유일 패권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미국은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동맹국들마저 약탈하고 수탈하는 방식으로 나타났으나, 그것은 위기를 모면해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몰락을 재촉하였습니다. 미국의 그런 패권적 행태는 각 나라에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더욱 확인시켜 주는 과정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권력을 나눠 먹을 것 같았던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의 정체가 명확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를 다 장악하고도 문재인 배신정권의 무능 속에서 개혁이 실패했고, 그 여파로 윤석열 반동정권이 등장했으며, 그리고 윤석열이 내란 범죄 행위를 자행했다는 사실은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이 서로 권력을 나눠 먹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재명 정권은 이런 교훈을 받아 안고 나아가야 했으나 지난날의 배신정권의 행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돈을 어려운 국내 경제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미국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군사적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하건만 한미동맹 현대화에 굴복해 한국 땅을 미국의 대중국 전초 기지 역할로 전락하게 하고 있으며, 동시에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받아내야 하건만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일본의 한반도 재침의 야망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들 배신세력과 반동세력은 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이 국민의힘의 분열과 더불어민주당의 내분 사태입니다. 그런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서로 내분 다툼을 벌이지만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빈부격차의 해소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주권 회복에 대해서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개혁이나 주권 회복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때문에 이들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의 민이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민은 인간으로 자각한 사람은 누구나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민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때는 민과 함께했다가 배신했던 세력이 권력을 잡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처음부터 민과 함께하는 세력이 새로운 정권의 주인으로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시대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애민시대에 맞는 애민·애국의 기치가 요구됩니다.



세계제국주의 세력의 형성과 함께 배신세력이 등장하여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하지만, 민족성과 국가라는 장벽도 무력화하여 세계적 차원에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약탈 수탈하려는 체제가 형성되면서 무너지는 과정은 애민과 애국의 사상과 이론을 또 한 번 혁신시키는 과정을 겪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사회 역사의 주체인 민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주체적 요구를 놓고 살펴볼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지난날에는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 인정되는 속에서 그 나라의 구성원이라면 자연스럽게 포괄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이해관계의 차이도 사회의 객관적 조건의 차이에 기초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지난날에는 민이라고 하면 주되게 객관적인 처지를 위주로 놓고 분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면 별반 의미가 없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객관적 처지보다는 실질적으로 누리려고 하는 주체적 요구가 더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자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처지가 아무리 좋거나 불리하더라도 결국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민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사회 객관적 처지보다는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려고 하는 자주적인 인간상이 사회 역사의 참다운 주체인 민임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애민이 시대의 발전에 따라 자주적인 인간상의 요구로 됨에 따라 애국도 주체적 요구에 따라 그 내용이 더욱 심화 풍부화되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애국의 기초는 주되게 핏줄과 언어, 지역과 문화의 공통성이라는 객관적 기초를 위주로 놓고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것은 맞지 않았습니다. 분명 핏줄과 언어, 지역과 문화의 공통성을 가진 매국노가 매국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민족 성원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불합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민족의 성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립하자면 객관적 측면을 기초로 놓고 바라보기보다는 민족이라는 공동체 집단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걸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려고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주체적 요구로 놓고 판단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애국을 운명 공동체 집단으로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려고 하느냐 하는 주체적 요구를 중심에 놓고 보니 결국 애민과 애국의 내용은 거의 일치하고 동일한 내용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게 민이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는데 애국이 애민과 달라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애민과 애국이 일치하게 파악되니 매국 행위에 대해서도 더욱 주체적으로 파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날에는 외세의 앞잡이 역할을 하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짓거리를 주되게 매국 행위로 파악하였습니다. 반면에 패권을 추구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행위는 애국 행위로 도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침략 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애국자 행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운명 공동체 집단으로 살려고 하느냐 하는 주체적 요구를 중심으로 놓고 애민과 애국의 내용을 살펴보자, 패권을 위한 침략 행위도 애국이 아니라 민에 반하는 반민의 행위가 될 뿐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반국가적이고 매국적인 행위로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확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식민지에서 매국노들이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는 것처럼 패권주의 세력 또한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 민을 침략에로 내몰아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게 아님이 밝혀진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이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 민을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으로 내몰아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궁극적으로 패배함으로써 일반적인 나라로서 누려야 할 주권 행사마저 제약당하도록 했다는 것은 결국 그 침략 행위가 매국 행위로 귀결된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미 제국주의 세력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민을 침략으로 내몰아가는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미국 민을 전쟁터로 몰아넣고 죽게 만들고 있는데, 나중에 몰락한다면 그 전쟁 범죄 행위에 대해 국제 협정이 맺어져 미국의 주권이 제약받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식민지에서의 매국 행위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세력의 패권적 침략 형태 또한 궁극적으로 매국 행위로 연결된다는 것을 직시하고 이에 반대해서 싸우는 것이 참다운 애국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애민과 애국의 내용이 이렇게 심화 발전된 것은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 인정받으면 별반 의미가 없기에 실질적으로 누려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의 권리를 누리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가능하다는 데에서 나오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실상 지금껏 한국 사회가 참답게 개혁되지 못했던 것은 자유와 평등이, 국가의 주권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실현되는 방식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민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은 누구나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만은 예외, 자기 가족만은 예외, 자기 집단만은 예외, 자기 나라와 국가만은 예외라고 생각했을 때 주인의 권리가 실현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군가가 개인의 권리가 짓밟아졌을 때 언젠가 자기 자신이 그 당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어느 집단이나 국가가 짓밟아졌을 때 언젠가 자기 집단이나 국가가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애민시대에서는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가 실현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리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일치와 입체, 통일입니다. 모두의 이해가 일치된 부분에서는 확고히 단결하고, 이 일치된 부분을 견지하는 조건에서는 차이를 입체적으로 존중하여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서로의 요구가 혼란되거나 모순됨이 없이 통일적인 전망성을 세워 풀어가야 합니다. 한마디로 애민시대에서는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론을 구사하여야 하고, 현 시기의 핵심적 목표가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회복이라는 것, 그리고 이를 가로막는 최대의 세력이 외세와 매국노이기에 이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현 시기 애민시대에서의 애민·애국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애민과 애국의 내용이 이렇게 풍부화해짐에 따라 그에 맞게 그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민이 직접 애민·애국의 정권을 세워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모든 애민·애국 세력이 단합해 가야 합니다. 이런 노력을 벌여나간다면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가 건설될 것이고, 그러면 그 힘으로 애민·애국의 정권을 세울 수 있고, 끝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방면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세상을 건설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26. 8. 24.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사회역사의 주체인 민이 제반 영역에서 주인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을 연구하고 알려내는 활동

한국의 역사에서 애민과 애국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1. 사회의 기본 운영 원리에서 애민과 애국의 역할  인간에 의한 지배와 억압이 이루어졌던 인류사의 전개 과정을 보면 사회는 크게 두 가지 기저 방향에서 전개됩니...
10/08/2026

한국의 역사에서 애민과 애국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1. 사회의 기본 운영 원리에서 애민과 애국의 역할



인간에 의한 지배와 억압이 이루어졌던 인류사의 전개 과정을 보면 사회는 크게 두 가지 기저 방향에서 전개됩니다. 하나는 사회의 통치 집단이 자기들의 지배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기저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구성원을 하나로 모아내는 기저입니다. 이 두 길항 관계에 따라 대체로 역사의 성쇠가 결정됩니다.



지배와 억압을 강요하자면 서로 간의 분열과 대결을 주장해야 하는데 그런 속에서 사회의 발전이 이뤄진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를 발전시키자면 사회의 구성원들을 단합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적 지혜와 힘을 적극적으로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애민과 애국입니다. 그 때문에 사회 발전의 기본 동력을 인간에 의한 지배와 억압에 두지 않고 애민과 애국을 사회 운영의 두 축으로 바라봅니다.



애민과 애국을 사회 운영의 기본 축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간에 의한 지배와 억압 방식이 노예제와 신분제, 자본제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민으로 포괄되는 대상이 계속 확대되었다고 하는 데에서 확인됩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했으나 신분제 사회에서는 더욱 그 대상이 확대되었고, 자본제 사회에서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다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는 존재로 인정되었습니다.



이렇게 민의 대상이 확장됨으로써 애민, 애국은 인류사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그 역할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에 의한 지배와 억압이 이뤄지는 조건에서도 애민과 애국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면 그런 지배와 억압이 사라지고 애민과 애국의 기치가 참답게 실현된다면 그 기능과 역할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에 의한 지배와 억압이 이뤄진 조건에서도 애민과 애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한국사의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2. 애민과 애국이 강조될 때 민의 삶은 풍족해지고 국력은 신장된다



한국사에서 애민의 효시는 단군조선의 건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인류사의 효시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애민이 등장하려면 인간으로서 자각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것도 사회적 존재로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국가의 건설로 증명됩니다. 단군조선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정신에 따라 건국되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나라의 건국사화가 있지만 이렇게 단군조선의 건국 시기보다도 이르게 인간의 자각에 기초하여 나라를 세웠다는 사화는 아직껏 없습니다.



물론 홍익인간의 이념은 단군이 아니라 환웅에 의해 제시된 것입니다. 여기서 환웅 시기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지금껏 누구나 역사서로 인정하고 있는 『삼국유사』에서 단군조선의 건국사화를 명백히 전하고 있으니, 단군조선의 건국만큼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군조선의 시기는 금법팔조에서 알 수 있듯 노예제 사회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류사의 초창기를 열었던 때여서 불가피한 역사적 조건이었습니다. 노예제 사회라는 시대적 한계를 지녔고, 건국 초기에는 영역도 제한적이었지만 계속 확장해 수많은 열국을 거느린 대제국으로 발전했습니다. 영토 또한 한반도에서부터 중국 대륙의 북부 전반을 아우르게 되었으며, 이를 포괄한 단군민족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것도 무려 2,0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의 국가를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영원불변한 게 없듯 단군조선 또한 열국들을 하나로 통합하던 중앙 집권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분열되었고, 끝내 붕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다시 이어받고 나선 나라가 고구려였습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대왕(고주몽)은 다물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다물은 다 무르자는 것으로서 단군조선의 영화와 번영을 되찾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환인, 환웅, 단군을 이어받는 하늘의 자손, 즉 천손민족임을 선언하였습니다.



하늘의 자손이라는 것은 인간의 자각에 기초한 홍익인간의 정신을 계승하여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지배와 패권의 추구와 관련이 없을뿐더러 그것을 배격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자부심은 누구에 대한 지배와 패권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존엄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홍익인간과 하늘의 자손이라는 기치는 평화를 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관계로 단군조선과 고구려가 단군민족 공동체의 영토에는 확고히 되찾고 지키려고 하였지만 그 이상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침략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단군민족을 평화 애호 민족이라고 바라보는 것도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고구려는 천손민족의 영화와 번영을 되찾기 위해 상무기풍을 확고히 확립하였습니다. 천손민족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침략자를 몰아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는 천손민족의 자부심과 상무적 기풍에 근거해 단군조선의 영토와 단군민족의 통합을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 결과 한반도 중부 지역에서부터 중국의 대륙 북부 지역 전반을 아우르며 대륙의 강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또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듯, 800년의 왕국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그것은 신라가 천손민족의 대의를 저버리면서 당나라의 외세를 끌어들여 침략해 왔는데, 이를 끝내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천손민족의 대의는 끊기지 않았고, 고구려를 지배하려는 당나라의 야욕을 분쇄하고 고구려를 부흥시키려는 투쟁이 전개되었습니다. 그 결과 고구려의 유민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함으로써 천손민족의 대업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 계승 투쟁을 적극 전개함으로써 한반도 북부에서부터 중국 대륙 북부에 걸친 영토를 되찾았으며 해동성국이라 부를 만큼 강성한 나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발해라는 나라는 어느 시기에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발해가 거란에 멸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강국으로 등장했던 나라가 단 한 번의 거란 침략에 무너진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당시 백두산의 화산 폭발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화산 폭발 때문에 큰 피해를 당한 상황에서 거란의 침입에 제대로 항거조차 못 하고 속절없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발해의 멸망 이후 천손민족의 위업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려는 벌써 국가 이름부터 고구려를 계승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하였습니다. 태조 왕건은 단군조선과 고구려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북진정책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개경을 수도로 두면서도 평양을 별경으로 삼아 서경을 설치하였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울러 단군민족의 구성원으로서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발해를 멸망시켰던 거란을 증오하며 거란이 고려와의 수교를 위해 낙타를 보내왔지만,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만부교에서 그 낙타를 굶겨 죽이는 단호한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이것은 태조 왕건이 천손민족으로서 발해와의 공동체 의식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있었다는 태도를 보여줌과 함께 거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단군조선과 고구려의 영토를 단호히 수복해야 한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려 태조 왕건의 정신은 거란과 여진의 침략을 맞아 단호히 격퇴하는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대제국으로 성장하는 원의 침략에 맞서는 투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실상 고려만큼 몽골제국과 장기간에 걸쳐 항전하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만큼 고려의 항쟁 정신은 거셌던 것입니다. 그 항쟁 정신의 사상적 뿌리가 단군조선의 역사성이었습니다.



외세의 침입을 맞아 고려가 위기에 처하자, 일연 스님은 고려가 단군조선을 이어받은 단군민족으로서의 뿌리를 분명히 하면서 단군조선의 건국사화를 명확히 밝혔던 것입니다.



실상 사람이 저항해 나서자면 그에 대한 원동력이 필요합니다. 그 원동력이 없이는 힘의 우위 앞에 대개 굴복하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그 정당성과 명분을 밝혀야 합니다. 여기서 단군민족의 유구한 역사성과 공동체 의식에서 그 해답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애국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항상 위기에 처하게 되면 단군 할아버지를 찾았던 것도 바로 여기에 근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 이후 사대 모화사상에 의해 조선이 건국됨으로써 애국의 기치는 심히 손상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었습니다. 홍익인간과 하늘의 자손이라는 인식은 애민과 애국의 뿌리로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애민 정신이 강조되면 애국의 정신이 강성해지게 됩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조선 시기 세종대왕의 모습입니다.



분명 이성계에 의한 조선의 건국은 천손민족으로서의 대의를 저버린 과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성계의 손자인 세종대왕은 그런 와중에도 애민 정신을 세워 갔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훈민정음의 창제입니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니 누구나 쉽게 배워 자기 뜻을 밝힐 수 있게 하겠다는 것에서 드러나듯 세종대왕의 핵심적 요체는 애민이었습니다.



실상 애민이 실현되려면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백성들의 뜻이 잘 전달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대신들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의 창제로 나아갔던 것은 세종대왕이 애민 정신에 얼마나 투철했는가를 보여주는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의 위대성은 그 창제 원리가 애민 정신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과학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은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사상적 원리에 기반합니다. 천지인은 홍익인간의 사상과 연결됩니다. 천지인이 환인(天), 환웅(地), 단군(人)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각성을 앞세운 사상적 우월성을 갖추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은 사람의 목소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소리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에 기반해 누구나 쉽게 배워 자기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애민 실현의 길을 열어두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애민의 길이 열리면 당연히 애국의 정신이 고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애민에 그치지 않고 애국의 정신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세종대왕 시기에 북진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세종대왕의 애민, 애국의 정신은 조선 사대부들의 모화사상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내우외환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쉽게 말해 나라 내부는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극악한 세력에 의해 더 이상 사회가 지탱될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고, 제국주의 세력이 이런 조선을 식민 지배하기 위해 침략해 오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런 조건에서 민은 스스로 이를 극복하는 길로 나서게 됩니다. 그것이 인내천(人乃天) 사상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뿌리가 단군민족이자 천손민족이었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를 실현하자면 노비제도와 신분제를 없애 인간이 온전히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면서도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막아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동학 농민군은 신분제 타파와 반외세 기치로 죽창을 들고 녹두벌판에 나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갑오농민전쟁은 승리를 이룩하지 못하였고, 이를 면밀히 연구하였던 신채호는 단호하게 역사는 민족 공동체라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역사라고 설파하면서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전진시키자면 무엇보다 항일 독립투쟁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길에 나섰던 것입니다.



이렇듯 애민과 애국은 나라와 민족의 융성을 담보하는 근간이었으며, 나라와 민족의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강력한 정신적 무기로 작용하였습니다.



3. 애민·애국이 붕괴할 때 사회가 혼란되고 국력이 쇠락한다



단군조선이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불러일으켜 원시 사회로부터 인류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은 인류 앞에 크나큰 공적으로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단군민족을 굳건하게 형성시키며 융성 번영의 길로 나갔던 것은 우리 민족의 활로를 열어준 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단군조선의 영화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잃은 망국의 아픔도 겪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사는 변화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지 그와 반대되는 길을 가는 것은 결코 올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은 현시기 한국의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입니다.



이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단군조선의 홍익인간 정신이 어떻게 굴절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홍익인간의 정신이 바로 애민과 애국의 기본 조건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홍익인간의 정신을 부정하게 되면 애민과 애국 또한 굴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홍익인간 정신의 부정은 안타깝게도 단군민족 내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나라가 신라입니다. 신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단군조선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로서 단군조선의 열국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신라 또한 홍익인간의 정신이 사회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풍류도(風流徒)입니다. 풍류도는 최치원이 난랑비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라의 현묘한 도를 풍류라고 한다면서 그것은 공자와 노자, 석가모니의 삼교를 포함하고 있고 뭇 백성을 교화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으로 자각하도록 교화하여 참다운 삶을 살도록 하는 것, 바로 이것이 홍익인간의 성신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런데 이 풍류도가 신라 진흥왕 시기에 화랑도로 바뀝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풍류도는 홍익인간의 정신에 기반을 두어 뭇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아 산천을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교화하는 과정을 밟아가는 단체였습니다. 그런데 화랑도로 조직화하면서 그 대상을 귀족의 자제로 한정하면서 신라 정권의 이익을 우선하는 조직으로 변질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물론 화랑도가 신라에서 구축되었기에 신라의 권리를 대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단군민족의 대의는 물론이고 인류 공동의 대의를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되면 홍익인간의 정신에 기반한 애민과 애국이 설 땅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자기 존엄을 중심에 두는 것과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자기 이익 실현에 관심을 두게 되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남을 지배하고 통치하려 듭니다. 반면에 자기의 존엄을 세우는 것을 중심에 두면 스스로의 자존감을 드높이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입장은 당연히 남을 지배하고 억압하려고 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반대하게 됩니다.



단군조선이 중앙집권적 힘을 강력히 행사했을 때에는 풍류도에서 홍익인간의 정신이 확고히 견지되었지만, 단군조선이 붕괴된 이후에는 그것이 고수되지 못하고 이색적인 사조가 침투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라의 풍류도는 서로 내분을 겪다가 신라 왕권에 의해 화랑도로 재편되었고, 결국 신라 왕권의 이익을 수호하는 조직으로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화랑도였던 김유신은 풍류도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김춘추와 손을 잡더니 급기야 당나라까지 끌어들여 단지 신라 영토를 좀 확장하려는 길에 나섰던 것입니다.



단군민족의 통일을 이루려면 천손민족의 대의에 맞게 추구하여야 하고, 당연히 단군조선의 영토 또한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신라는 단군민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당나라까지 끌어들였고, 신라 왕권의 영토를 좀 넓히려고 고구려의 영토 대부분을 포기하였습니다. 이런 신라의 행위는 다물의 기치를 내걸고 단군조선의 모든 영토를 되찾아 영화와 번영을 누리려고 했던 고구려의 모습과 대비됩니다.



단군민족 간의 애민, 애국을 부정하는 신라의 모습은 고구려를 계승해 등장했던 발해와 끝끝내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신라의 이런 일탈 행위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단군조선의 홍익인간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오는 가운데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겠다고 하면서 극복되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패거리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세력의 준동은 또다시 나타났습니다. 고려 시기의 그 대표적인 사람이 김부식이었습니다.



김부식은 개경파 문벌 귀족이었습니다. 그는 고구려의 계승 의식을 강조하는 서경파와 대립하면서 묘청의 난을 직접 진압함으로써 실세로 등장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정도라면 하나의 권세가로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부식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자기 문벌 귀족 패거리들의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대주의적 유교 사관에 의한 『삼국사기』를 집필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과 홍익인간의 사상적 계승에 심각한 굴절을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얼과 혼이 살아 있으면 상황이 어렵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사상이 썩으면 스스로 허물어집니다. 그래서 홍익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자각과 존엄을 내세웁니다. 그런데 김부식은 이런 단군조선의 정신과 역사를 똑바로 계승하여 세우려고 하지 않고 사대주의에 빠졌습니다. 단군민족의 존립 기반을 몽땅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단군조선의 위대한 정신인 홍익인간의 사상을 배반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 김부식이 단군민족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어리석은 짓을 벌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기 패거리들만의 이익을 앞세워 추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자기 힘이 가장 세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앞에 와서 무릎 꿇으라고 강박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조건에서는 세상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식으로 강변하면서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실상 김부식 같은 문벌 귀족의 패거리 앞에는 고려 왕조가 있었고, 거기에다가 단군조선과 고구려를 계승하려는 서경파는 물론이고 이에 함께하는 무장 세력도 존재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 세력을 짓밟고 개경 문벌 귀족들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유교 사관이었습니다. 유학의 태생지가 중국이기에 그 중국을 사대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학을 받아들인 문벌 귀족들이 국정을 장악해서 풀어가야 한다는 강변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 뿌리도 부정하는 반인륜적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단군조선의 역사와 정신을 부정하는 김부식의 사대주의적 유교 사관은 김부식 당대의 시기에만 영향을 미치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썩어빠진 정신이 계속 이어져 마침내 최영 장군의 요동 정벌의 명을 거부하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까지 나타났습니다.



조상이 살았던 영토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되찾으려고 하는 것이 후세대의 당연한 책무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성계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더니 결국 사대주의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하고 나온 격이었습니다. 이것은 김부식의 사대주의적 유교 사관이 얼마나 단군민족의 정신 계승에 해악을 끼쳤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래도 신라 시기에는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려고 당나라와 손을 잡기는 했으나 사대주의적 핑계를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성계는 사대주의 때문에 단군조선 이래로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이 살아왔던 영토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애민, 애국의 정신이 제대로 발양될 수 있겠습니까? 그 때문에 청이 새롭게 강성해 가는 데에도 조선의 지배층들은 대륙의 정세도 몰라보고 명에 대한 사대주의만 주야장천 외치다가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건만 여전히 자기 패거리들만의 이익만 추구하다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하였고, 제국주의적 열강이 침입해 오는데도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난국을 타개하고자 갑오년에 농민들이 신분제 타파와 반외세 기치를 내걸고 떨쳐나섰는데, 그 못된 사대주의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동포를 죽이라고 또다시 외세인 청나라를 끌어들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 또한 한반도에 군대를 끌고 들어오면서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후에도 사대주의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러시아에 의존하려다가 다시 러일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에 또다시 의존하려 하였으나 이미 미일 간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필리핀과 조선을 서로 각각 지배하기로 협의하였으니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단군조선의 역사와 정신은 물론이고 애민과 애국을 저버리면서 사대주의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결국 조선은 멸망하고 일제의 식민 지배의 길로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4. 홍익인간과 애민·애국은 서로 연동되어 진행된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국력이 강성하여 민의 삶이 풍족해지거나 민족적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이를 극복해 나갈 경우에는 단군조선의 역사와 정신이 강조되었습니다. 반면에 통치 집단의 탐욕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나라가 혼란에 휩싸여 국력이 쇠퇴해 갈 때에는 하나같이 단군조선의 역사와 정신이 부정당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홍익인간의 사상과 정신이 애민과 애국을 담보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상 애민과 애국의 관계는 서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백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삶의 터전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라와 민족을 수호한다면 그 주인인 백성을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애민을 견지하지 않는 조건에서 애국이 실현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애민을 견지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짓밟은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밖에 모르는 사람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나선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래서 애민이 관철되는 정도에 따라 애국의 내용이 견지되고, 애국의 정신이 얼마나 투철하냐에 따라 애민의 폭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세종대왕이 조선 시기에 사대주의적 유교 사관이 확립되고 신분제 사회였음에도 애민의 정신이 추구됨에 따라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 천민인 장영실을 과감히 등용하고 훈민정음까지 창제하는 길로 나아갔으며, 마침내 북진정책도 강력히 밀고 나갔던 데에서 드러납니다. 반면에 사대주의적 유교 사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면 조상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나서야 했던 요동 정벌을 포기하는 길로부터 시작해 그런 사대주의적 유교 사관을 확립한 패거리들의 권력 독점을 위해 싸우면서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하였고, 끝내 일제 식민 지배의 길로 빠지게 하였던 것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런 애민과 애국은 사실상 단군조선의 홍익인간 정신에 의해 담보되고 있습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게 애민 정신의 표현이고, 바로 이를 기반으로 단군조선이 건국되어 민족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이 애국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군조선의 정신과 역사를 얼마나 확고히 계승하느냐에 따라 애민과 애국이 연관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단군조선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려고 하면 애민, 애국은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단군조선의 역사와 정신을 부정하면 애민, 애국이 결국 부정당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역사를 살펴볼 때 단군조선의 역사와 정신을 얼마나 계승하려고 하였는가의 각도로 바라보는 것이 올바를 것이며, 앞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도 시대 흐름에 맞게 홍익인간의 정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각도에서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2026. 8. 10.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사회역사의 주체인 민이 제반 영역에서 주인된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을 연구하고 알려내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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