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9/2026
[성명] 성장의 미래만 있고 생존의 미래는 없는 2027년 예산안
- 대체불가능 대한민국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2027년, 소득 하위 20% 가구는 매달 약 28만 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살아갑니다. 청년 취업자 수는 45개월 연속 감소했고, 가계부채는 사상 처음 2,0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12.68%에 달하고, 식료품 등을 포함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3.4%로 3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2027년 예산안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정부 예산안에는 정작 이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첫째,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가 기업으로만 쏠립니다.
내년 국세수입은 194.2조 원으로 올해보다 49.8% 늘어납니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세수 증가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 등에 집중 투입합니다. 관련 예산은 21.3조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GPU 1만 장 구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반도체특별회계, 전력·용수 인프라 등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성장엔진특별보조금은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대기업이 지방에 3,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면 설비투자액의 절반을 국비로 지원합니다. 그러나 고용 창출과 고용 유지, 하청단가 개선, 중대재해 예방 등 공공성을 담보할 조건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업의 지역 투자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기업의 투자를 지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이 따라야 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조세 구조입니다. 반도체 호황이 끝나 세수가 줄어들면 지금의 확장재정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법인세 정상화와 금융투자소득 등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K자형 양극화를 말하면서 정작 실업급여를 줄였습니다.
정부는 확대재정을 강조하지만 일자리 사업 예산 증가율은 4.3%에 그쳤습니다. 전체 예산 증가율 12.8%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특히 실업소득 지원 예산은 14.1조 원에서 13.9조 원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실업급여에서 무급휴일 관련 지급액을 줄이고 조기재취업수당을 삭감했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모성보호와 저출생 대응에 투입하겠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소득을 줄여 다른 노동자에게 지원하는 방식이 과연 확대재정입니까. 국세수입이 194조 원 늘어나는 상황에서 하필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실업소득부터 줄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취약노동자 지원 144억 원, 노무제공자 사회보험료 383억 원, 외국인노동자 고용관리 159억 원을 모두 합쳐도 686억 원에 불과합니다. 반도체와 AI에 수십조 원을 투입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셋째, 기후위기와 재난에 대한 대비는 뒷전입니다.
환경 분야 예산은 5.2%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마저도 무공해차 보급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금 증가분 등의 영향이 큽니다.
재생에너지 예산이 1.3조 원에서 2.8조 원으로 늘었다지만, 증액분의 대부분은 금융지원입니다. 민간이 빚을 내서 짓도록 이자를 대주는 방식입니다.
공공재생에너지 인프라 예산이 전혀 없습니다. 발전공기업의 재생에너지 설비 직접 소유도, 지역과 시민이 함께 소유하는 발전 모델에 대한 지분 투자도, 계통 접속용량을 공공이 미리 확보해 소규모 사업자에게 개방하는 사업도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재난관리 예산이 24.4% 삭감됐다는 점입니다. 재난복구비만 8,100억 원 줄었습니다. 올여름 가뭄과 폭우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남쪽 지역의 현실을 정부는 보지 못했습니까. 유럽의 폭염과 네팔의 홍수 역시 여전히 남의 이야기입니까.
넷째, 162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은 국회의 통제를 우회할 우려가 큽니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으로 162.3조 원을 조성하고, 이 가운데 104.4조 원을 적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정책적 필요가 발생하면 추가경정예산 없이 기금 변경을 통해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국회의 예산 심의를 거치지 않고 수십조 원, 나아가 100조 원이 넘는 재정을 사실상 정부 재량으로 운용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더구나 사업비 45.3조 원 가운데 7.5조 원은 구체적인 용처조차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거대한 돈주머니부터 만들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미래대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후위기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업이 충분히 담겼는지 의문입니다. 정부가 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예산안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도체와 AI는 미래이지만, 폭우에 잠기는 마을과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미래가 아닙니까.
정부는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예산안에는 대체가능한 존재로 취급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막대한 성과급 대신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는 사람, 플랫폼에서 일하지만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무제공자, 인권침해에 노출된 외국인노동자,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 45개월째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 기후위기를 감당해야 할 미래세대가 그렇습니다.
KDI도 이미 반도체 중심의 성장이 고용 개선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실질임금 상승률이 낮아 성장의 성과가 가계소득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성장의 낙수효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정부 산하 연구기관조차 확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194조 원의 세수를 다시 산업 상층부에 집중하고, 정작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실업급여는 줄였습니다.
성장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 그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정의당은 요구합니다.
기업에 대한 막대한 재정지원에는 고용과 노동권,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부과해야 합니다. 불평등을 완화하고 실업과 빈곤을 막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기후위기와 재난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국회의 재정 통제를 우회하는 기금 운용은 재검토해야 합니다.
대체 가능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이 예산의 첫 번째 원칙이어야 합니다. 성장의 미래만 있고 생존의 미래가 없는 예산은 미래예산이 아닙니다. 정의당은 2027년 예산안이 반도체 공장의 담장을 넘어 모든 시민의 삶으로 향하도록 바로잡을 것을 요구합니다.
2026년 9월 3일
정의당